여름과 찰떡궁합, 문어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명절이 되면 경북 영천에 있는 외가의 밥상에는 무릇 문어 숙회가 올라왔다. 위엄한 자태를 뽐내며 차례상에 통째로 올랐던 문어를 썰어낸 것이었다. 얇게 썰은 삶은 문어를 초장에 찍어먹으면 지금이야 깔끔한 소주 한잔이 떠오르지만, 당시만해도 씹고 삼키는 즐거움에 게눈 감추듯 한 접시를 뚝딱 비우곤 했다.

사실 서울생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어와 돔베기(상어고기)가 없는 차례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문어를 차례상에 올리는 것은 경상도 북부지역의 문화다). 생각해보면 명절때마다 당연하게 먹었던 쫄깃하면서 담백한 문어의 맛은 누군가는 누리지 못했을 어릴적 최고의 호사였던 셈이다. 실제 문어는 예로부터 관혼상제나 임금님 수랏상에나 올라갈만큼 귀한 식재였다. 

상경 후 문어를 만난 곳은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뜨거운 물에 푹 삶아내 투박하게 썬 문어숙회와는 다른, 세련된 자태를 뽐내던 그것은 문어로 만든 세비체(레몬, 오렌지 등으로 맛을 낸 남미식 회무침). 그 이후로도 어느날은 종로의 한 극장 앞 주전부리를 파는 노점에서 빠짝 말린 자태로, 한 날은 홍대 길가에서 산 가쓰오부시를 잔뜩 얹은 타꼬야끼로 문어와의 만남은 계속됐다.

다가오는 명절도 없고, 당장 극장을 함께 갈 사람도, 북적이는 홍대거리로 향할 계획도 없지만 문어 생각이 문득 나는 것은 아마도 ‘여름’이기 때문일테다. 더운 햇볕아래 쉽게 지치기 쉬운 우리의 몸을 보하기에 여름이 가장 맛있는 문어는 맛과 영양을 고루갖춘 최고의 선택이다. 제철음식은 보약과 맞먹는다했으니, 일찍 찾아온 여름에 문어만한 보약이 또 어디에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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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속 ‘타우린’을 주목하라

초여름에 제일 맛을 내는 문어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그 인기가 뜨거웠다. 한 대형마트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 초 문어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배나 증가했다. 문어의 인기가 유례없이 치솟은 이유는 바로 문어에 들어있는 ‘타우린’의 효능이 주목받으면서다. 타우린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문어, 오징어, 새우, 조개류에 다량 함유돼 있다. 문어나 오징어 등을 말렸을 때 하얗게 피어나는 가루가 바로 타우린이다. 문어는 타우린의 함량이 연체동물 중 가장 많다.

지난해 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김영수 박사 연구팀은 타우린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억제하고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신경교세포를 활성화, 기억력 감퇴와 인지능력 저하 등의 경증 치매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타우린이 치매예방에 좋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존에 보고돼 있던 타우린의 효능도 점차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타우린은 우선 혈액 중에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증가를 억제해 동맥경화 등과 같은 혈관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타우린은 간 해독작용을 도와 간 기능을 향상시키며 젖산을 제거해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항산화기능도 하는데 타우린이 심장근육의 세포막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해 심장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실제로도 관련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과거에는 민간요법으로 심장에 좋지 않을때 문어를 고아먹기도 했다고 한다.

▶여름과 찰떡궁합… 기력회복에 ‘십점만점’

여름은 유독 해산물을 먹기 조심스러워지는 계절이다. 더워지는 요즘, 제 맛을 내는 해산물들은 우리 몸이 여름에 필요한 각종 효능을 가득 담고 있다. 봄에 이어 초여름까지가 제철인 문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여름을 눈 앞에 두고 문어는 마음껏 즐기기에 손색없는 식품이다. 문어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함량이 거의 없다. 당질도 거의 없어서 여름시즌을 위한 몸매관리에 돌입했다면 문어를 활용한 간단한 샐러드를 추천한다. 더위로 기력이 떨어지는 여름철 피로회복을 돕는 타우린 성분이 가득한 문어를 섭취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또한 문어는 노화방지에 좋은 비타민E와 나이아신을 함유하고 있어 노화를 억제하고 세포를 활성화시킨다. 망막의 기능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에 눈 건강을 지키고 시력을 향상시키는데도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문어에는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DHA와 EPA가 풍부하다. 수험생이나 성장기 어린이들의 두뇌발달을 돕고 학습효과를 높여준다. 뇌과학연구소 연구팀의 연구결과와 같이 치매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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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어떻게 먹어야 할까?

숙회로 주로 먹거나 탕으로 끓여먹었던 문어는 다양한 외국의 식문화가 소개되면서 조리법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특별한 날에 문어를 먹었던 우리나라와 달리 지중해, 포르투갈에서는 일반적인 식재로 널리 쓰여왔다. 이른바 ‘지중해식 샐러드’라 불리는 해산물 샐러드에도 문어가 빠지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문어를 얇게 잘라서 소스와 채소를 함께 곁들어먹는 ‘카르파치오’로도 많이 활용된다.

문어는 사실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무게가 무겁고 손질이 까다로워 가정에서 쉽게 조리하기 힘든 식재 중 하나다. 문어는 머리 안쪽을 가위로 잘라 뒤집어 내장을 제거해준 후 눈과 입을 제거해준다. 빨판 속 이물질은 소금, 밀가루 등을 주로 사용하는데 굵은 소금을 이용할 경우에는 문어에 쉽게 흠집이 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소금이나 밀가루를 문어에 적당량 부어 박박 문지른 후 물로 깨끗하게 헹궈낸다.

문어를 삶을 때는 무와 식초를 함께 넣으면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을 살릴 수 있다. 1kg 기준으로 약 10분정도 삶은 후에 충분히 식힌 후 잘라주면 문어 숙회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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