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떠났다, 좋은 제철 갈치를 찾기 위해

-문영한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부주방장의 갈치 이야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노릇하게 구운 갈치 토막이 식탁에 올라오는 날이면 엄마의 젓가락질이 바빠졌다. 얼마 되지 않은 살을 열심히 발라내 남편과 자식의 밥그릇 위로 올려주던 그 밥상머리의 풍경은 갈치구이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추억의 일부분이다.

어획량 감소로 최근 몸값이 뛰고 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국민생선이라고 불릴만큼 가격이 저렴했던 갈치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의 한식당 온달의 문영한 부주방장(38)은 이맘때면 유독 갈치 생각이 간절해진다고 했다.

“갈치를 토막내 정성스럽게 반찬으로 준비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아침에 부엌에서 퍼지던 고소한 갈치구이 냄새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문영한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부주방장이 요리를 하고 있다. 제주 은갈치를 찾기 위해 제주도로 날라간 그는 “고객(자신 보다는 다른 사람)에 즐거움을 오감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게 요리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제주산 은갈치를 찾아 나서다=7월, 갈치가 가장 맛있을 때다. 문 부주방장은 갈치 제철을 맞아 고민없이 짐을 쌌다. 목표는 맛있는 갈치를 구하는 것. 한껏 물 오른 갈치를 만나기 위해 그는 동료와 함께 제주도 동문시장, 서귀포시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갈치는 성질이 급해서 금방 죽기 때문에 사실 좋은 갈치회를 먹기 위해서는 제주도에 직접 갈 수 밖에 없어요.”

제주산 은갈치만을 고집해 왔다. 물론 이유는 있다. 국내 갈치 소비량에서 노르웨이 등 수입산 갈치의 입지가 넓어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분명 ‘신선도’에 있어서는 국내산 갈치가 월등하다. “우리나라의 전 연안에서 잡히는 갈치는 제주도 주변의 해역과 서해 남부 해역에 집중돼 분포하고 있어요. 서해안에서 잡히는 갈치는 먹갈치, 제주에서 잡히는 갈치는 은갈치라고 부르는데 온달에서는 제주 연안에서 낚시로 잡아올린 은갈치만을 사용합니다.”

갈치의 인기는 비단 내국인 방문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짭조름하면서 고소하고, 바삭하면서도 부드럽고 담백한 한국식 갈치는 중국 관광객들사이에서도 인기다. 사실 중국에도 갈치구이와 비슷한 요리가 있다. 자오옌다이위(椒盐带鱼)라고 부르는 이 요리는 사실 갈치 튀김에 가깝다. 후추와 소금이 기본 양념으로 들어가며 여기에 파, 생강, 간장이 들어간다. “중국식 갈치 요리에는 튀김에 간이 돼 있는 것과 달리 한국식 갈치는 특유의 담백함이 있어요. 이 점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긴 갈치를 집에서 한번에 구워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갈치구이를 떠올렸을 때 구운 갈치 토막이 연상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생선을 토막내 구워먹는 것은 생선의 맛을 반감시킨다. “칼을 닿은 생선의 신선도는 급격하게 떨어져요. 또한 잘라서 굽게되면 수분이 빨리 증발해 잘린 단면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갈치의 진짜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고민의 답은 ‘통구이’였다. 한식당 온달은 토막 내지 않은 ‘제주 갈치 통구이’를 메뉴로 내놨다. 1m가 넘는 제주산 은갈치를 살라만더라는 생선구이 전용기구를 사용해 구워냈다. 살라만더는 위에서 열이 나와 밑으로 기름기가 빠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생선구이 전용 기구. 식탁을 가득채우는 거대한 갈치가 통째로 구워져 올라오는 모습은 가히 압도적이다. 


▶요리에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갈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쏟아낸 그에게 ‘요리사’로서 본인에 대해 물었다. 데미 셰프, 즉 조리사와 조리장의 중간단계를 밟고 있는 그는 계속해서 성장중이라고 했다.

“커가면서 본인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보다는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오감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요리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온달에서 근무한지만 15년이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답례 만찬 및 한식세계화를 위해 중국, 대만, 등의 외국에서 열린 한식 프로모션에 참여했고, 주중한국문화원 7주년 기념 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중국 현지에서 열린 행사들에도 참가했다. 수많은 국빈행사 출장을 다닌 그가 한식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각별하다.

“맛을 기본으로 하는 한식이지만, 아직 한식이 익숙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모양과 걸맞는 스토리텔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고객과의 소통이 보다 더 수월하고 음식에 대한 또 다른 퀄리티(질)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2015년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있다. 유통가, 방송계 등 전분야를 아우르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셰프’들이 그 주인공이다. 실력과 입담을 갖춘 엔터테이너형 셰프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즘, 그에게 ‘스타 셰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스타셰프만을 꿈꾸면서 요리에 도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겉은 화려해보일지 몰라도 요리사라는 직업은 힘들고 험난합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위험한 주방도구도 많이 만져야해요.”

물론 셰프들의 활약은 함께 요리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기쁜 일이라고 했다. 그들로 하여금 조리사의 위상이 한층 더 올라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개인적으로 TV에 나오는 셰프 분들은 그만큼의 탤런트 기질이 하나가 더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처럼 묵묵히 일하면서 즐거움을 찾은 이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재능을 더 많은 사람들과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솔직히 TV에 많은 셰프분들이 나오면서 그 만큼 조리사의 위상은 한층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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