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추운 날씨에 술자리가 잦아지는 연말이 겹치면서 어느 때보다 뜨거운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이 찾아왔다. 국물 요리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야 탕, 국, 찌개별로 손발가락 모두 동원해도 모자랄 음식들이 즐비하지만, 가끔은 매번 먹던 맛이 아닌 새로운 개운함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이에 최근 붐이 일고 있는 중식당에서도 뜨거운 국물 요리가 인기라고 한다. 중식 국물 요리라면 짬뽕, 울면 정도만을 떠올리는 빈약한 상상력은 이제 그만. 최근 중식당들은 중국 현지인들이 즐기는 메뉴를 국내에 적극 들여와 소개하고 있다.
딴딴면
▶ 사천의 매콤함과 땅콩의 고소함이 만났다… 딴딴면(탄탄면ㆍ擔擔麵)
딴딴면은 한 그릇에 매콤, 달콤, 새콤, 고소한 맛까지 모두 담겨있는 이국적인 풍미로 중국 현지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요리다. 진한 닭고기 육수와 고추기름을 사용해 매콤한 맛이 나는 국물에 고소한 땅콩소스와 흑식초가 들어가 독특한 맛이 난다. 처음에는 독특한 맛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먹다 보면 그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맛에 반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딴딴면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위키피디아에는 “1841년 쓰촨성(사천) 쯔궁 시의 한 남성이 고안해서, 청두시에서 판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쓰촨성의 등록상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밀과 땅콩이 많이 생산되는 북쪽의 간쑤성(甘肅省)에서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 본적이 어디건 간에 현재는 상해, 홍콩 등 중국 전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왕가흥 크리스탈제이드 총괄셰프의 설명에 따르면, 딴딴면은 본래 이름이 없는 서민요리였다. 청나라 면 장수가 어깨에 물지게 같이 생긴 장대(대나무 기둥 같은 것에 앞, 뒤로 통이 매달려 있는 것)를 지고 다니며 한 쪽 통에는 국수를 다른 한 쪽 통에는 소스 등의 부재료를 담아 팔던 것이 이 요리의 시초라고 한다. 이 양쪽으로 통이 달린 장대를 중국말로 ‘딴딴’(擔擔, 담담)이라고 부른다. 본래 정확한 명칭이 없던 이 요리를 먹기 위해 사람들이 지나가던 장사꾼을 ‘딴딴’이라고 불러 세우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초기의 딴딴면은 국물 없이 소스만을 비벼주는 비빔면 형태였다고 한다. 땅콩을 곱게 갈고 으깨어 즙을 내고 육수와 함께 끓여 소스를 만들었다. 이것이 변형되어 현재는 고추기름을 사용한 매콤한 국물이 있는 탕면 요리가 되었다.
△맛있게 먹는 팁
딴딴면 맛의 특징은 땅콩의 고소함! 그러나 땅콩 소스가 무거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으니 먹기 전 3~5회 정도 아래에 있는 땅콩소스를 국물과 잘 뒤섞어 먹는다. 고소한 땅콩소스가 국물에 녹아 들며 현지의 독특한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사천식 우육탕면
▶ 술 마신 다음날, 속을 달래는 얼큰함… 사천식 우육탕면(牛肉湯麵)
우육탕면은 기본적으로 국물, 면, 편을 썬 소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탕면요리로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단출하지만 진하고 깊은 국물 맛과 부드러운 소고기의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중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요리지만, 지역별 특징이 반영되어 지역마다 서로 다른 모습과 맛을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광동식은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맑고 담백한 국물이 특징이고, 대만식은 간장 베이스의 진한 국물이 나온다.
반면 사천식으로 조리한 매콤한 우육탕면은 두반장, 사천고추가루, 쯔란 등을 넣어 특유의 톡 쏘는 향과 입이 얼얼할 정도의 매운 맛이 특징이다. (사천 지방의 사람들은 혹독한 날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맵고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어 땀을 빼는 것으로 풀곤 했다고 한다.) 독특한 향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나뉘기도 하지만, 입맛에만 잘 맞으면 오히려 우육탕면만 찾는 매니아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바로 ‘쯔란’(Cumin, 커민)이라는 향신료에서 나오는 향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주로 양꼬치에 찍어먹는 쯔란은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의 씨앗이다. 흔히 중동 요리나 인도의 탄두리 치킨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진한 향과 톡 쏘는 쓴맛이 바로 이 쯔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육탕면은 최근 대만, 홍콩 등 중화권으로의 여행이 크게 늘며, 한국인들에게도 제법 익숙한 음식이 되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사천식이 인기가 많은데, 특히 음주 후 속을 달래는 속풀이용으로 중년남성들에게 많이 찾는다고 한다.
△맛있게 먹는 팁
사천식 우육탕면에 들어가는 사천고추와 쯔란은 한국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매운 맛을 갖고 있다(입이 얼얼하게 매운맛). 더불어 톡 쏘는 향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은 섣불리 면을 들이키다가 기침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처음 5~7 젓가락 정도는 후후 불어 잘 식혀 먹을 것을 추천한다.
산슬면
▶ 짬뽕의 원조가 전하는 ‘칼칼한 감칠맛’… 산슬면(三絲麵)
산슬면은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류산슬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 산슬면과 류산슬의 ‘산슬(三絲)’은 동일한 한자어인데, ‘세가지 재료(三)를 가늘게 채 썰었다(絲)’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산슬면에 들어가는 세가지 재료는 돼지고기, 새우ㆍ오징어ㆍ해삼 등의 해산물, 그리고 각종 채소(배추, 버섯, 죽순 등)를 말한다. 이들 재료를 채 썰어 볶으면 자연스럽게 돼지고기의 기름이 베어나오는데, 여기에 육수를 부어 푹 끓인 뒤 사천 고추를 소량 넣으면 깊은 국물 맛의 산슬면이 완성된다.
맵지 않고 시원칼칼한 국물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으며 새우, 해삼, 죽순 등 각종 귀한 재료들을 듬뿍 넣은 건강식이다. 왕가흥 셰프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칼칼한 맛과 감칠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국식 탕면 요리 가운데서도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메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산슬면은 한국 중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짬뽕의 원조 격인 음식이기도 하다. 짬뽕은 차오마몐(초마면, 炒馬麵)이 변형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차
오마몐의 유래가 된 음식이 탕러우쓰(湯肉絲麵)이다. 돼지고기, 표고버섯, 죽순, 파 등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은 탕러우쓰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시원하게 끓여 후춧가루만 넣어 먹었다. 재료와 조리법, 맛이 흡사한 산슬면과 탕러우쓰 모두 우리나라 짬뽕의 시초가 되는 요리라 할 수 있다.
△맛있게 먹는 팁
산슬면은 아낌없이 듬뿍 넣은 세가지 재료의 맛이 국물에 풍부하게 우러나 있는 요리다. 면을 먹기 전에 국물을 먼저 떠 먹어 입맛을 한번 돋궈주고, 재료에서 우러난 깊은 국물 맛을 음미하면 좋다.
[도움말 및 사진 제공=크리스탈제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