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잡곡은 천민만 먹고 쌀은 양반만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에 잡곡은 천대받았다. 윤기가 흐르는 흰 쌀밥은 부의 상징이었던 반면, 잡곡은 가난한 사람이나 먹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쌀과 잡곡의 위상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하얀 쌀은 소비가 생산에 미치지 못해 남아도는 데다 다이어트의 적으로 몰리기까지 한다. 그에 반해 잡곡은 건강을 위해서 챙겨먹어야 할, 귀한 몸이 됐다.
잡곡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우리 땅에서 나는 잡곡을 넘어 수입 잡곡까지 많은 가정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특히 렌틸콩, 퀴노아, 병아리콩 등은 연예인들의 다이어트 비결로 알려지며 각광받고 있다. ‘슈퍼곡물’로까지 불리는 이들은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멀리서 건너온 수입 작물이라는 점과 비싼 가격 때문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우리 곡물 중에도 슈퍼곡물 못지 않게 풍부한 영양과 효능을 갖춘 잡곡들이 많다. 우리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줄 우리 잡곡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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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검은콩은 렌틸콩보다 단백질은 더 풍부하고 탄수화물을 함량은 낮아서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는 훨씬 효과적인 단백질 급원식품이자 다이어트 식품이 될 수 있다. 또한 여성호르몬과 비타민 E가 풍부해 갱년기 여성에게 더욱 좋은 식품이다. 검은콩은 밥에 넣어 먹거나 조려 먹을 수 있고 다른 요리에 활용할 수도 있어 다양하게 섭취할 수 있다.
▶단백질 빵빵 ‘율무’=페루, 칠레 등 안데스 고원에서 자라는 퀴노아는 쌀보다 조금 작은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단백질이 특히 풍부하다. 국내산 곡류 중에도 퀴노아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곡류가 있다. 바로 ‘율무’다. 율무는 단백질과 함께 수분 함량도 높아 다이어트와 피부 건강에 매우 좋다. 칼륨 또한 풍부해 부종을 줄이고 노폐물 배출에도 효과적이다.
율무는 차로 즐기기에도 좋은데, 율무를 차로 만들 때는 율무를 노릇하게 잘 볶은 후, 물을 부어 우려내면 된다. 단 율무는 자궁을 수축시키는 성분이 있으므로 임신부는 섭취하지 않는 게 좋다.
▶100가지 독 풀어주는 ‘녹두’=녹두는 병아리콩처럼 다양한 요리의 재료로 활용되는 곡물이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병아리콩은 주로 국이나 카레에 넣어 먹는데, 우리 땅에서 자라는 녹두도 죽, 빈대떡, 묵, 밥 등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옛말에 ‘녹두는 100가지 독을 풀어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영양이 뛰어나단 뜻이다. 녹두에는 단백질과 비타민 B1이 풍부해 두뇌 활동에 도움을 준다.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소화도 잘 돼 성장기 어린이가 먹으면 더욱 좋다.
녹두는 껍질에 영양소가 풍부하므로 껍질째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단 저혈압이 있는 사람이라면 녹두를 많이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기질의 보고 ‘조’=강아지풀이 원형인 조는 척박한 산간지에서 재배가 가능해 오래도록 중요한 식량이었다. 한때 보리 다음으로 흔한 작물이었던 조는 현재 3000ha 정도의 밭에서만 재배되고 있다.
조에는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다. 조를 넣어 밥을 해먹으면 쌀밥보다 많은 식이섬유를 섭취할 수 있어 포만감이 들고 변비도 예방할 수 있다. 조는 소화 흡수율이 높은 편이라 아이와 임산부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차조와 메조로 나뉘는 조는 쌀과 섞어 밥을 지어 먹거나 엿, 떡, 소주 등으로 요리한다.
▶유용한 구황작물 ‘피’=예로부터 ‘피죽도 못 얻어먹은 얼굴’이라는 말이 있다. 피는 평소에는 논에서 벼의 양분을 뺏는 잡초 취급을 당하지만 전쟁이나 기근이 심할 때는 유용한 구황작물이었다.
피에는 단백질, 지방질, 비타민 B1 등이 많이 들어있어 영양적인 면에서는 다른 작물에 뒤지지 않는다. 피는 오래 두어도 맛과 영양소 함량의 변화가 없다. 쌀과 함께 밥을 하거나 떡, 엿을 만드는 데 쓰이고 간장, 된장, 술을 담그는 데도 사용된다. 껍질인 겨는 기름을 짠다.
▶콩과 함께 먹으면 최고 ‘수수’=수수는 아이의 탄생과 함께 한동안은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르는 곡물이다. 붉은 색이 악귀를 막아 아이가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란다는 기복의 뜻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수에는 찰수수와 메수수가 있는데, 밥에 섞어 먹거나 수수팥떡, 수수부꾸미, 수수경단 등 떡을 하는 품종은 찰수수다. 메수수는 동물의 사료나 술의 재료로 쓰인다.
수수는 주성분이 탄수화물이지만 칼로리가 낮은 편이며, 염증을 완화하고 방광의 면역력을 키우는 피로안토시아니딘 성분이 있어 방광염 치료에 좋다. 콩과 함께 먹으면 단백질과 지방질을 보충해 영양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단 수수에는 청산이 들어있어 날 것으로 많이 섭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순수 단백질 ‘기장’=단백질, 지방, 비타민 A가 풍부한 기장은 밥이나 죽을 하는 메기장과 떡, 엿, 중국 동북부의 황주라는 술의 원로로 쓰는 차기장으로 나뉜다. 기장의 주성분은 당질이며 조단백질의 95%는 순수 단백질로 그 함량이 쌀보다 높다.
기장은 밥이나 떡에 주로 활용한다. 떡으로 만들 때는 가루를 내 기장단자로 많이 요리한다. 전병이나 인절미로 만들어도 소화가 잘 되고 맛이 좋다. 기장은 팥과 함께 섞어서도 많이 사용한다. 유럽에서는 껍질째 돼지의 사료로 쓰기도 해 ‘호그 밀렛(hog millet)’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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