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푸드=민상식 기자] 우리나라에서 과일 배를 재배한 역사는 길다. 고대사를 서술한 역사서에는 집에서 배나무를 키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546년 고구려 양원왕 때 두 그루의 배나무 가지가 이어지는 연리지 현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유사에도 8세기 통일신라 혜공왕 때 재상인 각간의 집 배나무에 수많은 참새가 날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문헌상 남아있는 맛있는 배로는 ‘신선이 먹는 배’로 알려진 교리(交梨)가 있다.
조선 중기의 시인 이응희는 옥담시집(玉譚詩集)에서 교리를 한입 베어 물고는 “깨물어 먹으면 눈을 입에 머금은 듯하고 삼키면 서리를 먹는 것 같다. 속세의 번뇌가 사라지니 굳이 신선의 음료를 마실 필요가 없다”고 적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배는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지역이 원산지다. 서쪽으로 간 배는 유럽 등지에서 재배되는 조롱박 모양의 배로, 동쪽으로 간 배는 중국 등지에서 둥근 산돌배 형태로 진화했다.
우리나라 배는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 품종이 주류를 이뤘지만 1984년 나주배연구소를 중심으로 고유품종이 육성됐다. 최근에는 한아름ㆍ원황ㆍ황금ㆍ화산ㆍ추황 등 국산 고유종이 일본종을 대체하고 있는 추세다.
배를 뜻하는 한자인 이(梨)는 몸에 이롭다는 뜻에서 생겼다. 한방에서는 기관지 질환의 예방과 치료, 해열, 소화촉진 등을 인정받는다. 동의보감에는 배는 가슴이 답답한 것을 멎게 하고 풍열과 가슴 속에 뭉친 열을 없애준다고 적혀 있다.
실제 배에 들어있는 루테올린 성분이 기침, 기관지염,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배 껍질에는 플라보노이드와 폴리페놀의 함량이 많아, 항산화 능력과 면역기능이 뛰어나다. 배를 껍질째 먹는 것은 식감이 좋지 않아 거부감이 들지만, 최근 스위트스킨ㆍ조이스킨 등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새로운 품종이 개발됐다.
최근에는 미백 작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알부틴’ 성분을 함유한 과일은 배가 유일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은 시중에 유통 중인 25종의 과일에 포함된 알부틴 함유량에 대한 조사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년간 아로니아, 블루베리, 복숭아, 사과, 체리, 아보카도, 토마토, 자두, 배, 감, 딸기, 멜론, 바나나 등 시중 과일 25종을 수거해 알부틴 함유량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결과 알부틴 성분은 전체 25종의 과일 중 유일하게 배에서만 100g당 28.9㎎이 검출됐다.
알부틴은 기미, 주근깨 억제 및 미백은 물론 요도염, 방광염 등에 효과가 있어 미백 화장품이나 비뇨기계 질환 치료제에 많이 쓰이는 성분으로 알려졌다.
도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알부틴 성분에 대한 연구가 미미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며 “올해 안에 채소류를 대상으로 알부틴 등의 함유량 조사를 추가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s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