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보다 깊은, 가을 탄 ‘나물’의 맛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나물하면 봄이다. 녹은 땅에서 싹을 틔워 봄이 생기를 가득 버금은 봄 역시도 나물과 잘 어울린다. 산과 들에 난 냉이며, 달래를 따다 음식에 넣으면 식탁이 한가득 봄이 된다.

나물하면 봄이니 가을의 ‘나물’은 왠지 낯설다. 가을날 수확하는 작물들,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는 햇살의 조합은 봄보다 더 깊은 나물의 맛을 보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봄 여름의 갖은 풍파를 이겨내고 잘 익은 수확물을 뽀득하게 잘 말려 일년 내내 두고두고 먹는 가을이 만들어낸 ‘나물’의 매력에 빠져보자.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연초 정월대보름이면 밥상에 올라오는 호박고지는 가을 햇살을 맞고 태어난 대표적인 나물 중 하나다. 가을내 햇볕에 말린 호박고지는 말리는 동안 비타민D가 풍부해져 혈액의 칼슘 농도를 조절,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무기질, 철분 등 호박이 본디 갖고 있던 각종 영양들이 농축돼 있고 식이섬유도 풍부해 다이어트 및 간 건강에도 좋다.

식감도 좋아져 간장, 들기름 등으로 살짝만 무쳐내도 그 맛이 일품이다. 말린 호박을 사용할 때는 물에 헹군 후 잠시 담궜다가 꺼내 쓰면 되는데, 물에 너무 오래 불리면 무쳐도 간이 잘 스며들지 않기 때문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다진파, 다진마늘과 함께 무치면 풍미가 더욱 좋아진다.

호박고지 만큼이나 가을 햇살에 말려서 더 맛있는 것이 박이다. 들깨무침이나 국에 넣어 많이 먹는 박고지는 섬유질이 풍부해 다이어트식품으로 제격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박이 열을 내리고 갈증을 해소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칼슘과 철, 인 등이 골고루 함유돼 있어 남녀노소에게 맛있는 찬으로, 영양식으로 손색없는 식품. 박고지는 미지근한 물에 불려서 들깨를 넣어 볶거나 간을 해서 무쳐서 나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흔히 먹는 무말랭이 무침 대신에 박고지를 무친 박고지무침도 무말랭이 못잖은 식감과 맛을 자랑한다.

볕에 말려 먹기 좋은 또 다른 식품은 토란대다. 육개장을 먹을 때 종종 만나게되는 토란대는 껍질을 벗겨 잘 말리면 육개장 뿐만이 아니라 볶았을 때 밥 도둑 노릇을 톡톡히 한다. 불면증에 좋은 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는 토란대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기능을 개선해준다. 칼슘 함량이 높아 골다공증에도 효과적이며 비타민과 아연, 철분 등 무기질도 풍부하다.

가을에 따고난 고추 뒤에 남은 고춧잎도 가을에 맛볼 수 있는 맛 중 하나다. 무말랭이와 함께 무쳐먹기도 하고, 나물을 만들 때 고춧잎을 더하면 전체적인 찬의 맛이 더 살아난다. 장아찌로 만들어서 흰 쌀밥과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고춧잎에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항암효과가 있을 뿐더러 비타민A가 풋고추의 몇 십배, 비타민C가 사과의 50배, 칼슘이 우유의 2배로 들어있을 정도로 건강식이다. 다른 푸른나물과 마찬가지로 참기름과 간장, 고추장을 이용해 무침을 해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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