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진 손맛, 전통 한식을 맛보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수운잡방의 요리들은 단순히 종가 음식으로 치부하기에는 체계적이다.(수운잡방의 요리들은) 약이 되는 요리다”. 1540년경 저술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조리서인 수운잡방을 계승하고 있는 광산 김씨 종가의 종부 김도은 씨가 수운잡방의 요리들에 대해 한 말이다.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웠던 회향과 정향, 헤이즐넛 등이 재료로 사용됐고, 여름철이나 환절기, 가을, 겨울 등 계절에 맞는 조리법이 들어있다”는 것이 수운잡방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안동지역 산지의 마와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아서 엿물을 부어 만든 보양식인 ‘서여탕’, 영계를 손질해 참기름으로 볶은 후 갖은 양념과 함께 솥에서 졸여 형개(경북지방에 분포하는 약초)와 산초가루로 향미를 끌어올린 ‘전계아’. 한국인에게도 낯선, 수운잡방이 소개하는 ‘전통 한식’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 세계인 앞에 재현됐다. 선조의 지혜와 전통이 담긴 요리들이 전통방식을 이어가고 있는 종부와 종손, 최신 미식 트렌드의 최전방에 있는 셰프들의 손에서 재탄생한 것이다. 

서울신라호텔 라연은 종가 음식을 현대의 입맛에 맞게 재현한 ‘미미정례’를 진행했다. 좌측은 광산 김씨 집안에 이어져내려오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조리서 수운잡방. [사진제공=서울신라호텔]


약이 되는 요리, 선조의 지혜가 담겨 있는 요리, 그저 고리타분한 고서의 한줄로 치부하기에는 ‘의미있는’ 종가 요리를 소개하고 나선 곳은 서울신라호텔이다. 서울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은 지난 28일부터 3일간 종가음식의 본질인 맛과 멋, 정(情)과 예(禮)에 집중, 현대식 요리기법을 적용해 종가음식을 새롭게 선보이는 ‘미미정례’ 행사를 진행했다. 

메이필드 호텔의 전통 한정식당 ‘봉래헌’은 아름다운 한옥건축과 정원이 돋보이는 곳으로 여유롭게 왕가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사진제공=메이필드 호텔]


‘수운잡방의 본연의 맛을 지키면서도 세계화가 가능한 글로벌 수준에 맞는 코스 메뉴’를 탄생시키기 위해 신라호텔 한식당 셰프들은 전통 한식 ‘수운잡방’의 조리법을 전수받았다. 김 씨는 “집에서는 전통방식 그대로 먹지만 현재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듯 해서 연구를 했다”며 “귀중한 책(수운잡방)을 재현하게 돼 감사하고 영광”이라고 했다. 

봉래헌이 선보이는 구절판 메뉴 [사진제공=메이필드 호텔]


국내 특급호텔들이 한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의 한식당의 수는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 회전율, 식재 수급 등의 문제로 자취를 감춰왔던 호텔 내 ‘한식’ 입지가 넓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움직임이다. 콘래드 호텔 관계자는 한식과 관련한 호텔 프로모션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신선한 재료로 셰프가 직접 만든 전통 한식을 세련되게 담아내, 호텔을 찾는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한식을 보다 매력있게 느낄 수 있도록 이러한 한식 프로모션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파트하얏트서울이 선보이고 있는 삼계구이 [사진제공=파크하얏트서울]


국내 미식 트렌드를 선도해온 특급호텔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식을 풀어내는 여러 방식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전통’과 ‘시대’의 조화다. 메이필드 호텔의 전통 한정식당 ‘봉래헌’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인증한 궁중음식 체험 식당으로 선정된 곳이다. 모든 메뉴는 서울과 경기 지방에 근간을 둔 궁중음식과 반가음식을 구현하고 있으며, 27년 동안 한정식만을 담당한 실력파 여성 이금희 조리장의 야무진 손맛과 담백한 맛을 강조한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 메뉴로는 전통 궁중음식을 재현해 진구절, 신선로, 삼합장과, 가평 잣으로 즙을 내어 버무린 대하 냉채 등으로 구성된 코스요리와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점심특선 등 정갈하고 품격있는 상차림으로 전통 한식당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식재는 충남 예산의 직영 농장에서 재배하는 무농약,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신선하고 담백한 제철식재를 사용한다.

파트하얏트서울이 선보이고 있는 삼계구이 [사진제공=파크하얏트서울]


파크 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는 지난 9월 중순부터 한식의 맛은 그대로 유지하되, 새로운 요리기법을 통해 전통 한식을 업그레이드시킨 ‘강남 컴포트 퀴진(Gangnam Comfort Cuisine)’을 선보이고 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총주방장과 한식 마스터 셰프는 전통 한식의 기본 틀은 지키되 김치나 된장의 독특한 발효 향에 거부감을 느끼는 외국인들까지도 전통 한식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더 라운지만의 레시피를 개발했다. 현대적 조리 기술과 플레이팅(담음새)을 활용하되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한식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메뉴는 한국식 ‘떡갈비 버거’와 ‘불닭 클럽샌드위치’ 등 간편한 메뉴부터 삼계탕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삼계구이’와 ‘보쌈’, ‘더덕불고기’, ‘돌솥비빔밥’ 등 단품 메뉴 등으로 구성된다.

콘래드 서울의 뷔페 레스토랑 제스트(Zest)는 김장철을 맞이해 김장을 주제로 한 테마위크를 오는 10일까지 실시하고, 입맛을 돋워줄 다양한 김장 대표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오픈 키친과 라이브 쿠킹 스테이션으로 구성된 제스트의 한식 섹션에는 한식 셰프가 직접 담은 배추겉절이를 비롯해 보쌈김치, 오이소박이, 굴보쌈, 삼겹살수육 등이 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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